해외 신규원전 등 도입동향과 우리의 대응 방향
본 연구는 오늘날 새로이 전개되는 국제정치와 원전시장의 동향을 배경으로 해외의 신규 원전 도입 동향과 원자력 수요를 파악하고, 한국의 원전 수출과 원자력 협력체제 구축을 목표로 잠재적 원전 수출 대상국과 협력방안을 제시하고자 수행되었다. 과연 2020년대 변화된 국제 환경과 일부 국가의 원전 수요가 한국에게 새로운 원전 수출과 원자력 협력 확대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까?
2000년대 말 국제사회의 ‘원자력 르네상스’ 분위기 속에서 한국은 원전 수출의 다크호스이자 새로운 선두주자로 급부상하였다. 2009년 12월 말 아랍에미리트(UAE)에 처음으로 원전 4기를 수출하는 개가를 올려 전 세계의 화제가 되었고, 다른 원전수출국과 중견국들의 부러움을 샀다. 거의 같은 시기인 2009년 12월 초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요르단에 연구용 원자로를 수출함으로써 국내 최초로 연구로를 수출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는 세계무대에서 한국이 신흥 원자력 강국으로 등장했음을 알리는 청신호였다. 만약 이런 추세가 지속되었더라면, 오늘날 한국의 원자력은 한국경제와 세계경제에서 반도체와 조선과 자동차를 능가하는 위치를 차지했을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일본의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강대국의 원전수출 개입으로 원전시장의 성격이 크게 바뀌면서, 결과적으로 UAE의 원전 수출과 요르단의 연구로 수출 이후 한국의 원전과 연구로 수출은 사실상 전무한 상태이다. 물론 한국의 뛰어난 원전 부품 제조 역량과 원자력 연구개발 역량으로 중·소규모의 각종 원자력 수출이 지속되고 있지만, 그 규모와 수출의 효과는 원전과 연구로 수출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국내 일부에서는 오늘날 한국 원자력 수출의 침체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은 원자력의 독특한 성격을 외면한, 맹목적인 비판으로 들린다. 원자력은 일반 산업과 다른 2개의 특성이 있다. 첫째, 원자력이 방사능을 배출함에 따라, 안전에 대한 과도한 민감성이 있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아일랜드 원전사고,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사고에 이어 세계 3대 원전사고로 불리는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당시 ‘원자력 르네상스’에 찬물을 끼얹졌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전에 ‘원자력 르네상스’가 예상했던 그런 원전시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원전은 원자력의 이중적 성격(평화적, 군사적)과 ‘거대 인프라’의 성격 때문에 일반 개인 소비자가 아니라, 국가가 거래당사자이다. 따라서 원전의 거래에는 지정학적, 외교적, 재정적 요소가 필수적으로 동반된다. 원전의 거래는 일반 상용물자와 달리 외교적으로 얼마나 가깝고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지정학적, 세력경쟁적 고려를 중시하고 금전적 채산성 여부를 과연 무시할 수 있는지, 원전 완성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재정을 지원하고 동원할 수 있는지 등이 원전 수출입의 핵심 변수로 등장했다. 한국 원전의 최대 강점은 좋은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정해진 시간 내에 공급하는데 있다. 그런데 대다수 원전 수입국은 원전 안전장치 추가와 최대의 안전성 보장, 수출국의 재정 동원, 외교 안보적 추가 지원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이 이런 원전 수입국의 요구를 충족하기란 쉽지 않다. 세계적 강대국이자, 국가 주도 원전수출국으로서 지정학적 투자까지 마다 않는 러시아와 중국이 오늘 국제 원전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미국과 프랑스와 강대국도 점차 국가의 개입을 늘리며, 이에 경쟁하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상황이 한국에게 불리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 한국은 하드한 산업제조역량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문화력의 연성권력에서도 세계적인 화제가 되고 있다. 오늘 세계는 미중 전략경쟁의 소용돌이에 빨려들어 가지만, 그 중에서도 한국은 강대국 세력정치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중견국가, 통상국가, 중추국가로서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다. 이런 한국과 협력을 원하는 국가도 많다. 따라서 이 보고서는 이런 국제 원전시장과 국제정치의 새로운 동향은 한국에게 새로운 도전요인과 기회요인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고, 2020년대에 2009년의 원전과 연구로 수출의 성공 신화를 재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제시하고자 한다.
한국에게 원자력이란 대체 무엇인가? 원자력 정책의 중심을 잡기 위해서 우리는 원자력이 한국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오늘 한국의 원전 건설·운영 및 원자력 연구개발 역량은 경제산업통상, 과학기술, 환경 분야에서 핵심 자산이자, 주요 국가역량 중 하나이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분야에서 한국이 보유한 원전과 원자력 역량은 외교안보적 자산이자, 한국 국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오늘 한국이 세계 10대 경제대국, 세계 8대 교역대국, 세계 7대 수출대국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원전이 제공한 대량의 값싸고 양질의 전기 제공이 한 몫을 했다는데 이견이 없다. 특히 오늘 한국을 세계 최고 수준의 산업제조국가로 만드는데 기여한 반도체, 자동차, 반도체, 조선, 철강 등도 원전이 없었더라면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국은 사실상 섬 국가인데다 내부에서 에너지자원이 생산되지 않고 더욱이 남북분단과 강대국 세력경쟁이 치열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에너지안보가 지극히 중요한데, 원전이 한국의 에너지안보를 지키는 보루의 역할을 했었다. 원자력이 없었더라면 중화학공업과 첨단산업의 발달이 없었고, 후자가 없었다면 산업제품의 수출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한국은 오늘 ‘BTS’, ‘기생충’, ‘오징어게임’ 등이 세계를 휩쓰는 나라가 아니라, 어쩌면 오늘 북한 또는 다른 에너지부족과 유사하게 에너지난에 묶여 산업발전의 기회를 잃어버린 나라가 되었을지 모른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에서 원자력은 수출과 에너지정책, 기후변화 대응 정책, 과학기술정책, 대미외교 등에서 항상 주요 정책과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한국의 경제적·과학기술적·환경적·외교적 자산을 한국의 국익 신장뿐만 아니라, 지역과 세계의 번영과 안전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한국의 특권인 동시에 국제사회를 향한 책무이기도 한다. 특히 미중 전략경쟁과 기후변화 시대에 한국 원자력(원전)은 중소규모 국가들이 강대국 간 지정학적 경쟁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고, 전 인류의 긴급 현안인 기후변화에 대응하는데 필요한 대안적 원자력(원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큰 정치적·인류적 의미가 있다.
제1장은 이 보고서의 연구목적, 범위와 구성, 연구 배경과 필요성, 활용방안과 기대효과를 제시하고 토론했다. 특히 이 보고서는 2020년대 새로이 전개되는 미중 전략경쟁과 기후변화 시대를 맞아, 원전의 필요성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찾고, 한국 원전수출과 원자력외교를 위한 새로운 기회를 토론하고 제시하고자 했다.
제2장은 세계의 원전 가동 현황과 대륙별·지역별·국가별 원전 및 원자력의 이용과 수요 동향을 조사하고 비교 평가했다. 오늘 세계는 21세기 초의 세계적인 ‘원자력 르네상스’에 찬물을 끼얹었던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의 충격에서 점차 회복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급감했던 원자력 발전량이 최근 서서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21년 7월 기준, 32개국이 총 445기의 원전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 전력생산량의 약 10%에 해당된다. 오늘 세계는 현재 52기의 원전을 건설 중이며, 100기의 원전이 계획 중에 있다. 추가로 330기의 원전이 제안 중인데, 향후 10, 20년 내에 약 100여기의 원전 물량이 국제 원전시장에 나올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 외에도 노후 원전의 가동연장 및 폐로, 원전 도입을 위한 원자력 연구개발, 원전 운영역량과 통제역량 등의 국제시장도 크게 열릴 전망이다.
제3장은 주요 신규 원전 도입국이자, 한국의 잠재적 원전 수출 대상국을 선별하여, 개별 국들의 원전 도입 계획과 준비 동향을 상세히 분석했다. 잠재적 한국 원전 도입국들의 원전 및 원자력 수요를 평가하고, 이들의 정치경제적 환경과 실제 원전 도입 가능성을 조사 분석했다. 이런 분석의 결과는 한국정부의 원전 수출전략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제4장은 한국의 원전 및 부문별 원자력 역량과 수출 경쟁력을 조사하고 평가했다. 한국의 수출 및 국제협력이 가능한 일체 원자력 하드웨어(시공, 기기·부품·핵연료 제작, 연구로 제작 및 시공 등)와 소프트웨어(원전 설계, 운영, 안전성 평가, 정비유지, 인적 교류, 원자력 연구개발, 운영 교육, 원자력안전 및 핵비확산·핵안보 통제체제 이전과 교육 등)에서 한국의 내부 역량 및 수출 역량을 조사하고 평가했다. 사실 원전 수출은 원전 수출 그 자체에 그치지 않고, 폭넓고 깊은 외교, 국방, 과학기술의 협력이 수반되고 있으며, 종종 그런 부대조건이 원전수출의 관건이 되기도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원전 이외 한국이 제공할 수 있는 국가적 강점에 대한 연구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제5장은 기존 원자력 수출 강국의 원전수출 및 원자력 국제협력 사례를 분석하고, 한국의 원전수출과 원자력외교를 위한 함의를 찾고자 했다. 이 장은 특히 미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4개 원자력수출의 기성 강국 및 신흥 강국을 중심으로 이들의 원자력 수출 성과를 평가하고, 교훈을 찾고자 했다. 한국은 후발 원전수출국으로서 앞으로 계속하여 이들과 경쟁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원자력 수출 및 외교역량에서 강점과 약점을 조사하고 교훈을 찾는 것은 한국의 원자력수출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제6장은 결론으로서 위에서 조사 분석한 내용을 요약하고, 각종 정책제안을 정리했다. 끝으로 원전 수출과 원자력 국제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한국의 원자력외교의 역할 및 역량 강화 필요성을 강조했다.